Q. 간단한 인사와 소개 부탁드릴게요.


조재현 (이하 조) – 안녕하세요. 서울 퍼스트 스포츠에서 원장 조재현입니다. 올해 삼육대학교 졸업 후 좋은 분들을 만나서 플로어 볼 관련 일을 하고 26살 청년입니다.


김주형 (이하 김) – 반갑습니다. 서울 퍼스트 스포츠 대표 김주형입니다. 나이는 28살입니다.


송성연 (이하 송) – 안녕하세요. 현재 퍼스트 스포츠 원장 송성연입니다.




Q. 플로어 볼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조 – 2012년 겨울 방학 때 시작했어요.


김 – 저는 21살 때 접하게 되었어요.


송 – 저는 대학교 3학년 때 플로어볼 지도자 연수를 받으면서 흥미를 느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Q. 플로어 볼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김 – 현재 북유럽 국가에서 축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에요. 아이스 하키와 규칙이 비슷하고 스틱과 볼을 사용하는 종목이죠.




Q. 플로어 볼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요?


조 – 송성연 선수의 소개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보다 6개월 먼저 시작했는데, 재밌는 운동이 있다고 같이 해보자고 해서 시작했어요.


김 – 학창 시절 선배님이 먼저 하고 있었는데, 그 선배랑 친해서 재미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송 – 우연히 지도자 연수를 받게 되었는데, 지도자 강사님이 저희 학교 선배님이셨는데, 국가대표 생활을 하고 계셨고, 관심 있으면 해보라 해서 우연찮게 하게 되었어요.




Q. 처음 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집안에서의 반대는 없었나요?


조 – 저는 초등학교 때 검도 선수, 대학교 전까지는 합기도 선수를 해왔기 때문에 다른 종목을 한다고 해서 운동에 대한 부모님의 큰 반대는 없었어요.


김 – 저도 어릴 적부터 운동을 많이 좋아했고 해왔어요. 저 자신도 다른 친구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을 해왔었죠. 부모님께서는 뒷바라지를 못해주신 것에 대해 미안함을 가지고 계시는데, 반대는 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성인이 돼서 하는 일이고,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니까요.


송 – 저 또한 집이 좋은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졸업 후 취업을 할 생각이었지만 부모님이 반대보다는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를 바라보고 좋은 결과를 내보이겠다고 했더니 걱정보다는 응원을 많이 해주셔요.




Q. 플로어 볼만의 매력을 꼽아보자면?


조- 정말 힘든 게 매력이에요. 뛰다보면 정말 힘들어져요. 옷이 땀에 다 젖어서 늘어지는 걸 느끼는데, 그래도 그것 때문에 하게 되요. 끝나면 ‘아 정말 운동 했구나’ 하는 느낌과 슈팅, 드리블을 습득할 때마다 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요.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김 – 플로어 볼은 파워풀하고 스피드한 종목이기 때문에 유럽에서도 인기가 많아요. 저 또한 이 두 가지 때문에 플로어 볼을 계속해서 하고 있어요.


송 – 저는 혼자가 아닌 팀이 맞춰서 움직이는 걸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간의 팀워크, 의사소통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한 마디로 협동심이 가장 중요한 스포츠에요. 그런 부분에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어요.




Q. 플로어 볼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점 때문에 어려움을 겪거나 힘들었을 때가 있으신가요?


조 – 딱히 어렵거나 힘든 건 없지만 누군가 뭐하냐고 물어봤을 때 항상 똑같은 래퍼토리를 말해야 되요. ‘하키의 삼촌격인 그런 스포츠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 애로사항이에요.


김 – 플로어 볼이란 종목이 비인기라는 수식이 붙어있기 때문에 그 점이 가장 어려워요. 힘든 건 아닌데, 비인기라는 수식어 때문에 많이 아쉬울 따름이에요.


송 – 저도 제일 힘든 것보다는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이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으니까, 정식종목이 아니니까 똑같은 설명을 계속해서 해야 하고,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세요. 하지만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제는 괜찮고, 어디서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Q. 자료를 찾던 중 플로어 볼이 공식 종목이 아니라서 자비를 들여야 한다고 들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송 – 제가 알고 있기로 정식 종목이 되기 위해서는 대한 체육회 정가맹 단체가 되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후원은 많이 나오는데, 나라에서 실질적인 지원이 나오는 건 없어요. 그래서 국제 대회에 나갈 때는 개인 사비가 들어갈 때도 있고 협회에서 지원이 들어올 때도 있어요. 이건 어느 비인기 종목이라도 다 마찬가지인거 같아요. 지금은 초중고등학교 스포츠 리그 종목도 생기고, 잘한 팀에게 지원도 해주고 있어서 앞으로 더 발전이 있을거라 생각해요. 준가맹 단체 신청도 했고 하나하나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Q. 플로어 볼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를 꼽아보자면?


조 – 송성연 선수와 같이 싱가포르 세계대학 선수권 대회를 나갔다 왔는데, 처음으로 태극마크와 8번이라는 등 번호를 달고 나간 첫 국제대회였어요. 그 때 선발 멤버를 정할 때 제 이름이 호명되고 팀원들의 호응을 받으며 나갈 때가 가장 좋았어요.


김 – 저도 국가대표라는 태극마크를 달고 애국가를 불렀을 때를 꼽고 싶어요. 다른 운동 방송을 보면 축구, 농구, 야구 선수들처럼 저도 ‘하고 싶다’라고 생각만 해왔는데 직접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 가장 좋았어요.


송 – 어릴 때부터 운동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텔레비전에서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다른 국가 선수들과 경기를 하는 걸 많이 봐왔어요. 제가 직접 애국가를 부르고, 경기를 뛴다는 게 너무 뿌듯했고, 알려지지 않은 종목이었기 때문에 동아리를 만들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재밌어하고, 즐겨 하는 점이 뿌듯했어요. 또 개인연습을 할 때 스스로 재미있다고 느끼고 어떻게 해야 더 잘할까라고 생각하고 하는 저 자신을 볼 때 행복을 느껴요.




Q. 운동을 하다보면 위험에 자주 노출이 되는데, 부상을 당해본 경험은 없으신가요?


조 – 플로어 볼이 되게 격렬한 스포츠라서 잔부상이 많아요. 하지만 아직까지 큰 부상은 없었어요.


김 – 2014년 세계 대회 진출권 아시아대회 때 한일전 때 경기는 이기고 있었는데, 일본 선수 스틱에 제 눈이 맞아서 경기가 약간 지연됐을 때가 가장 큰 부상이었어요. 그 이외에는 딱히 큰 부상은 없었어요.


송 – 운동 자체가 격렬한 편이라서 잔부상은 있지만 큰 부상은 없었어요. 싱가포르 때 다리에 부상을 당했는데, 이 매력이라는게 다리를 쩔뚝거리면서도 교체보다는 어떻게든 뛰어서 이기고 싶었어요. 다친 것 보다는 경기에 집중을 했어요.



Q. 운동을 하다보면 다른 직업들과 다르게 힘든 점이 많을 것 같아요. 가장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면?


조 – 저는 싱가포르 세계 대학권 선수 때 3달을 준비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훈련도 많이 했고, 합숙 훈련, 개인적인 일이 많아서.... 살도 많이 빠지고, 국가대표가 된 건 좋았지만 많이 힘들었어요.


김 – 저 뿐만 아니라 여기 없는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 형들, 동생들, 모두 똑같을 거에요. 자기 직업이 있는데, 직업 후에 연습을 하는거에요. 훈련하고 자기 생활로 돌아가는 게 가장 힘들어요. 이걸 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줄까, 봐줄까, 라는 생각도 있어요.


송 – 아무래도 일과 병행을 해야 하는데, 부모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갈거냐’ ‘그걸로 평생 살거냐’라고 했을 때가 힘들죠. 미래라는게 누군가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서... 그래도 몸은 힘들지만 정신 상태는 매우 행복하고 불평하지 않고 하고 있어요.




Q. 만약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고 계셨을까요?


조 –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했지만 저는 안정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펀드보다는 저축을 좋아하는데, 운동을 하다보니까 퍼스트 스포츠라는 사업을 하고 있고 사업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운동을 안했다면 평범한 회사에 들어갔을 거에요.


김 – 저는 솔직하게 만약에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없거나, 어디 갇혀 있었을 거에요. 질풍노도의 시기에 집안도 어려웠고, 놀림도 많이 받았고,운동을 좋아했으나 공부도 못했고, 불량한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운동을 안했으면 쉽게 말해서 나쁜 길로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지 않았을까 해요. 왠지 모르게 그럴 거 같아요. 왜냐면 제가 지금 잘되었기 때문에 안 됐을 때의 모습을 나쁘게 상상하고 싶어요. 그래야 지금 제가 더 강해질 거 같아요.


송 – 저도 안정된 직업을 갖고 싶어서 공무원, 체육 관련 직업을 했을 거 같아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을 안정보다는 모험이라는 배를 타고 아무도 알 수 없는 항해를 하는 것처럼 지금은 제 자신이 되게 불안하고 그 반면 큰 설렘도 가지고 있어요. 안했다면 일반적인 회사원 이 됐을 거 같아요.




Q. 플로어볼 외에 즐겨 하시는 운동이 있으신가요?


조 – 저는 배드민턴을 좋아해요. 동네 친구들과 풋살을 즐기고 있어요.


김 – 농구도 좋아하고 축구도 좋아해요. 농구, 축구 동호회도 활동을 하고 있어요. 중학교 친구들과 축구 대회도 나가기도 해요. 플로어볼이 주종목이기 때문에 몸을 사려가면서 하고 있어요.


송 – 저는 축구를 계속해서 해왔어요. 선수 생활은 안했지만 어릴 때 축구부 활동도 했고요. 축구와 플로어 볼이 과학적 연관성은 없지만 이런 팀 스포츠는 모든 게 연관 되어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과거에 팀 스포츠를 경험해본 사람일수록 더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유럽에서는 플로어 볼이 인기 종목이지만 한국에서는 비인기 종목인데, 개인적으로 플로어 볼의 대중화를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이 이루어졌으면 하신가요?


조 - 이건 제가 하고 있는 플로어볼에게만 바라는 점이 아니라 모든 비인기 종목을 말하는 건데요. 나라와 국민의 관심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가 항상 잘하는 종목만 지원한다면 우리나라는 진짜 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김 - 우선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기 종목 운동이 지원을 받으면서 더 발전되는 것처럼 비인기 종목도 비인기라는 타이틀을 받지 않게 많은 지원을 해준다면 앞으로 더 대중화가 되고, 대회에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에요.


송 - 플로어볼의 홍보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많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을 거 같아요. 욕심으로는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종목에 채택이 되어 자연스러운 홍보를 원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경험해볼 수 있고 한 번 경험을 하게 되면 이 종목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강습회나 이벤트성 경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을 것 같아요.




Q. 롤 모델이 있다면 어떤 스포츠 선수의 어떤 점을 닮고 싶으신가요?


조 - 같은 플로어볼을 하는 국가대표 주장 신종석 선수가 제 롤 모델이에요. 플로어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 학교 선배이자 좋아하는 형님이기도 한 신종석 선수에게 항상 많이 배우고 좋은 것은 닮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김 - 많은 운동선수와 멋진 선수들이 많이 있지만 딱 한명만 뽑기가 어렵네요. 저는 모든 플로어볼 국가대표 선수들을 뽑을게요. 그 이유는 비인기지만 각자의 직업을 갖고 어려움 속에서도 무언가를 포기하면서 매주 훈련에 참여하고 다시 자신의 일을 시작하는 모든 선수 (신종석, 이영준, 이기웅, 서영훈, 연광환, 이재만, 그 외) 들을 뽑고 싶어요.


송 - 현재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에 주장인 신종석 선수를 뽑을게요. 아무도 플로어볼에 대해 알지 못할 때 이 종목의 매력에 대해 확실함을 느끼고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열정하나로 스웨덴 까지 가서 플로어볼을 배우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테크니션과 훌륭한 리더쉽으로 코치 뿐 만 아니라 선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선수여서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신종석 선수의 용기에 대해 너무 감명 깊게 생각하고 저 역시도 생각보다 실천이 먼저인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Q.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조 - 잘 하는 선수, 존경 받는 선수가 되고 싶지만 지금 목표는 열심히 뛰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가 컨디션이 좋지 못해 실력이 100% 발휘되지 못한 날이건 잘 뛴 날이건 매 경기 열심히 임해서 훗날 플로어볼이 대중화가 되어서 관중이 생기고 했을 때 관중들이 재미있는 경기 보실 수 있게 열심히 뛰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김 - 잘 하는 선수, 골 많이 넣는 선수, 빠른 선수, 뛰어난 선수, 등등 이런 말이 많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김주형 선수’라는 말 안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선배, 후배들도 누군가에게 얘기할 때 또는 사회생활 할 때 ‘김주형 선수’같은 사람이 되라. 이런 말을 듣고 싶어요. 마치 성실함을 따질 때 박지성 선수를 많이 언급하잖아요.


송 - 팀 내에 에이스로 기억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팀에 이 선수는 꼭 필요한 선수다.’ ‘득점은 못하더라도 없어서는 안 될 선수다!’ 이런 선수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어요.




Q. 향후 참여하시는 대회 일정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조 - 12월에 있을 스웨덴 국제대회 엔트리에는 떨어졌지만 내년에 있을 아시아 대회를 준비하면서 열심히 훈련할 예정이에요.


김 - 향후 있을 대회에서는 전국체전, 전국 플로어볼 대회, KFC(코리아 플로어볼 챔피언쉽), 2014세계대회가 있어요. 이번에 우리 대한민국이 첫 세계대회를 진출하여 나가는 대회라 관심과 세계의 벽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큰 대회에요.


송 - 올해 2014년에 플로어볼대회로써는 제일 큰대회인 월드 플로어볼 챔피언쉽에 참가를 하게 되는데 쉽게 얘기하면 전 세계의 축제인 축구의 월드컵처럼 플로어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대회이고 그만큼의 큰 의미가 있는 대회라고 볼 수 있어요.




Q. 플로어볼 뿐만 아니라 운동 선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조언 및 충고)


조 - 제가 감히 아직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할 위치는 아니지만 같이 크는 입장이라고 생각했을 때 한 말씀 드리면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열심히 하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지금 99도 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1도를 넘지 못하고 중도 포기 한다면 너무 안타까울 것 같아요!


김 - 항상 초심을 잊지 말고 되새기며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거에요. 넘어져도 포기하지 말고, 때로는 쉬어가며, 뛸 때도 있고, 꿈과 목표에게 급하게 가지보다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세요. 그럼 언젠가는 내 자신이 달라져 있고 목표 또한 더 커지고 이미 이뤘을 거에요.


송 -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철저한 자기관리, 자신과의 싸움이 정말 중요해요.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어렵고 또 자기 자신을 이겨야 좋은 성적과 결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Q. 마무리 인사 부탁드릴게요.


조 - 아직 비인기 종목인 플로어볼에 이렇게 관심 가져주시고 찾아와 주셔서 좋은 시간 보낼 수 있게 해주시고 또 이렇게 플로어볼 홍보까지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재미있고 처음이라 신기한 경험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 플로어볼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릴게요!


김 - 이렇게 인터뷰를 해주신 인터뷰파인더 분들께 감사합니다.

 앞으로 플로어볼을 더 많이 알리고,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부탁드릴게요. 플로어볼을 알고 있는 모든 분들과 알아갈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 보이며 제가 서 있는 위치에서 더욱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지금까지 플로어볼 국가대표 No. 3 김주형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송 - 먼저 이렇게 인터뷰를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플로어볼에 대한 관심 많이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대한민국을 대표로 2014 월드 플로어볼 챔피언쉽에 참가하는 대표팀 응원 많이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노윤창
사진/ 고재광, 이광민
편집/ 안지수, 노윤창






Q. 이 글을 읽을 독자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 합니다.


안녕하세요. 인라인 선수 이종석입니다. 보통 인라인이라고 하면 동네에서 어린 친구들이 즐기는 레저 스포츠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인라인 선수라고 하면 ‘인라인 선수도 있어? 신기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널리 아는 축구, 농구, 야구 같은 스포츠 외에도 다양한 스포츠 경기와 선수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이들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전을 위해 많은 땀과 열정을 쏟고 있어요. 특히 저의 주 종목인 인라인 슬라럼을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어요.





Q. 인라인 국가대표란?


인라인은 다양한 종목이 있어요. 가장 대중적인 종목은 스피드입니다. 그 외에 하키, 슬라럼, 어그레시브 등이 있어요. 이 종목들은 대부분 스포츠 연맹과 스포츠 협회 등 다양한 기관을 통해 선수 등록이 이루어집니다. 이런 기관들에서 대회를 주최하고 각 대회에서 가장 높은 포인트 점수를 획득한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는 방식이에요. 때로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선발하기도 해요. 국내 대회 외에도 중국, 타이완,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프랑스 등의 다양한 세계 대회에도 참가할 수 있어요. 이 외에도 다양한 행사, 공연 등에 참가할 수 있게 참가할 수 있어요.




Q.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저는 인라인을 시작한 지 11년 정도 됐어요.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정말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했었어요. 가장 중요한건 연습량이겠죠? 아무리 구력이 높다고 해서 모두가 잘 타는 건 아니에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걸 위해 얼마나 투자하고, 노력하고, 생각했는지 그리고 행동으로 옮겼는지.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열정을 뽑아냈는지... 이런 것들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저는 청소년 시절에 평일에는 4시간 이상, 주말에는 8시간 이상을 인라인에 투자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미친 짓 같지만 그 때는 인라인을 타는 것 자체로도 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연습량 외에 필요한 것은 생각이에요. 인라인 슬라럼은 하나의 콘텐츠고 하나의 예술이라고 불릴 정도에요. 김연아의 아이스 피겨 스케이팅처럼 노래에 맞춰 다양한 안무와 슬라럼 기술을 표현하는 경기에요. 그래서 항상 대회에 나가기 위해 프로그램을 노래에 맞춰, 어떻게 표현할지, 어떤 노래가 좋을지 고민하고 생각해요. 또 기술에 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연습량과 생각 외에 중요한 건 건강이에요. 기초 체력이 뒷받침 해줘야 대회에서 완벽한 프로그램을 구사 할 수 있겠죠? 하루 1시간만이라도 본인의 기초 체력을 키웠으면 해요.





Q. 인라인(슬라럼)은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


어릴 때부터 밖에서 뛰어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항상 자전거 혹은 인라인, 킥보드를 탔어요. 그러던 와중 텔레비전에서 인라인 슬라럼을 하는 것을 보고 바로 빠져들었어요. 인라인 슬라럼에 큰 매력을 느껴서 혼자 종이컵을 깔고 연습하고 동호회에 가입을 하고 대회에도 나갔어요. 점점 욕심이 커지다보니 현재에 이르게 되었어요.







Q. 인라인(슬라럼)만의 매력은?


인라인 슬라럼에는 많은 기술이 있어요. 초급 기술부터 중급, 고급. 모두 합쳐 백가지가 넘어요.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이러한 기술들을 쓰기 위해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고 항상 집중하고 노력해야 된다는 점이 매력이에요. 기술을 습득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한 성취감을 느껴요.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여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가 주인공이 되어 무대를 만드는 것도 큰 매력이에요.





Q.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는지?


인라인 슬라럼이 비인기 종목이라 일반 대중들이 알아볼 정도는 아니에요. 하지만 세계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해외를 방문할 경우 유독 한국 선수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해외 슬라러머들이 티셔츠, 가방 등에 싸인을 받아가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요. 이걸 보면 ‘한국 사람은 어딜가든 사랑 받는구나...‘ ’이게 한류인가?‘ 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인이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껴요.


슬라럼 마니아층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 모두가 슬라럼이라는 운동을 알 수 있게 모두에게 알리고 전파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선수가 되고 싶어요.





Q. 부상의 위험은 어느 정도 있나요?


슬라럼은 콘이라는 장애물들을 깔고 그 사이에서 다양한 기술들을 하는 종목이에요. 그래서 많은 기술들이 다리를 꼬고, 돌고, 앉고 많은 관절과 근육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에요. 그래서 무엇보다 인라인의 안정된 기본 주행이 필수요소에요. 자기 레벨에 맞는 기술들을 연습한다면 위험요소가 줄어들고 근육발달과 관절운동 및 신체의 균형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되요.




Q. 대회는 얼마나 있고 얼마나 출전하고 있는지?


2009년 이후로는 인라인 뮤지컬 ‘젊음의 행진’에 참여하고 군 입대 문제로 대회 참가율이 저조해졌어요. 제대 후에는 국내의 인라인 인기가 많이 저하되었어요. 현재는 학업에 집중하느라 연습량이 예전에 비해 줄어들어서 많은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시간이 될 때마다 대회에 참가하면서 내년에는 더 많은 대회에 출전할 생각이에요.




Q. 학업과 병행하는데 문제점은 없는지?


저도 큰 고민 중 하나인데... 학과는 영상제작학과라서 학과 특성상 밤을 새서 작업하고 팀워크를 필수로 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과제를 하며 학교에서 살다시피 해요. 하지만 이런 것들 때문에 인라인을 못 탄다는 것은 핑계에요. 다양한 행사에는 모두 참가하지는 못하지만 시간을 쪼개서 혼자서 연습을 하고 있어요.




Q. 롤모델은 있는지?


롤모델 보다는 존경하는 선수들이 있어요. 그 분들이 있기에 현재 우리 슬라럼 국가대표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라인 코치를 해주던 동호회 형님, 누님들이 저의 존경의 대상이에요.







Q. 체력보충은 어떻게 하나요?


특별한 보충법은 없어요. 기본적으로 저는 먹는 걸 잘 먹어요.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잘 먹고 아침마다 어머님이 해주시는 특식 ‘마녀스프’를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해요. 제 생각에는 어머님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마녀스프’를 먹기 때문에 건강한 것 같아요.




Q. 대회에서 실수 한 적이 있나요?


엄청 많이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덩치에 안 맞게 소심했어요. 그래서 대회 때마다 심리적으로 압박을 많이 받았어요. 물론 지금도 매번 떨리고 실수를 하지만 이런 실수들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을 믿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에요. ‘나는 최고다!’라는 주문을 외우며 대회에 임한다면 부담감을 덜 수 있을 거에요.




Q. 인라인(슬라럼) 종류에 대해서 설명 해주세요.


인라인 슬라럼 대회에는 다양한 종목이 있어요. 슬라럼 대회는 스피드, 프리스타일, 페어, 배틀. 이렇게 4가지 종목으로 나뉘어져 있어요.


 첫 번째 스피드는 20개의 콘이 80cm 간격으로 깔려 있고 그 사이를 한 발로 가는 기술인 원풋을 이용해 출발 지점부터 도착 지점까지 빨리 나오는 선수가 우승하는 경기에요.


 두 번째 프리스타일은 50cm, 80cm, 120cm의 콘이 3줄로 깔려 있고 그 사이에서 본인의 BGM에 맞추어 기술을 표현하는 종목이에요.


 세 번째 페어 종목은 프리스타일과 전체적으로 비슷해요. 두 명의 선수가 호흡을 맞추는 경기에요.


 마지막 배틀은 토너먼트 방식으로 자유롭게 본인의 기술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우승하는 방식이에요. 이 외에도 에어, 슬라이드 같은 이벤트 경기도 하고 있어요.




Q. 스타킹에 출연하셔서 20kg 감량 하셨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와 방송에 출연하게 된 계기, 느낌은?


슬프게도 저는 원체 살이 잘 찌는 체질이에요. 그래서 항상 체중 관리를 하는 편이죠. 잠깐 방심하면 살이 엄청 쪄요. 슬라럼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서 출연했어요. 공중파 방송 등 섭외가 들어오면 모두 참여하려 해요.




Q. 인라인을 비롯해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꿈나무들에게 조언 및 충고 한마디 해주세요.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중요해요. 그 중에서 긍정적 마인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운동이라는 것이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해야 되요. 하지만 잘 안 될 때 슬럼프가 많이 와요. 특히 많은 사람들이 이 슬럼프에 무너지고 자신을 학대해요. 앞만 보고 달려오지는 않았는지 뒤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꾸준히 연습을 한다면 언젠가 본인의 색깔에 맞는 스타일이 생길거에요. 슬럼프에 무너지지 말고 계속해서 달려가길 바랄게요!




Q. 이종석에게 인라인(슬라럼)이란?


친구에요. 어릴 때부터 인라인으로 인해 즐겁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어요.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주었던 만큼 저에게는 친구와 다름없어요. 이것으로 인해 얻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소심하던 성격도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어요. 이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앞으로 언제까지 슬라럼 선수 생활을 할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며 오랫동안 즐겁게 타고 싶어요.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 편집/ 안지수, 노윤창





Q. 야구는 언제부터 시작하셨고 이끌어 주신 은사님은 누구십니까?

 초등학교 5학년 시작하였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경남고 감독님이신 어우홍감독님, 이고 중학교에는 이기락감독님 이었습니다.



Q. 해설은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1982년 프로야구 출범할 때부터 시작 했고, 그전에 동아방송에서 고교야구 몇차례 했었습니다.



Q. 해설시 하루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아침에 오면 사무실에서 4개의 화면을 보면서 미국 메이저리그, 일본야구 보고, 스마트폰으로 보고 싶은경기 보고, 인터넷에서도 찾아보고, 국내야구는 1주일에 MBC스포츠 플러스에서 3번 라이브방송을 합니다. 가령 LG와 두산의 경기를 중계할 에정이면 미리 LG와 두산이 그 전에 경기하는 모습을 다 보고 준비합니다. 중계하는 날이면 중계자료 준비도 하고 경기장에는 경기 3시간 전에 가서 선수, 감독, 인터뷰하고 정보수집을 합니다. 중계하는 날은 많은 말 안하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습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명승부전은 어떤 경기 입니까?

아무래도 베이징 올림픽으로 봅니다. 다시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상황입니다. 한번도 지지 않고 우승을 한다는 것은 실력도 있었지만 운도 따랐습니다. 야구는 한번도 패하지 않고 승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Q. 2008베이징 올림픽에서 수 많은 어록을 만들고 인기를 얻었는데 예상하셨습니까?

그런거 없었습니다. 국가대표경기를 중계하면 일방적으로 응원하면 됩니다. 국내야구는 팬이 갈라져 있어서 조금만 치우치면 편파중계 한다고 합니다.



Q. 해설위원으로서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십니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해설자들은 저하고 입장이 다를 것입니다. 야구는 스포츠 산업으로 봐야 됩니다. 스포츠 산업은 관중과 수입이 있어야 됩니다. 팀을 없앨까봐 전전긍긍하면 흥행 못합니다. 

즉, 스타를 만들어야 됩니다. 축구는 A매치 한번하면 공중파 중계 하기 때문에 저도 구자철, 손흥민을 압니다. 야구는 올림픽도 아니고 WBC도 다르고 100년 내내 이승엽, 김동주만 바라봐서는 안된다. 새로운 스타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젊은 선수 위주로 품성, 인성, 태도 좋으면 의도적으로 칭찬합니다. 스타가 그래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어떤팀은 젊은 선수들이 없고 또다른 어떤팀은 젊은 선수들이 많습니다. 

오해해서 편파라고 말하는데 예컨대 김현수, 고영민, 정수빈, 김상수, 배영섭을 칭찬했고 한화는 정범모 했는데 못따라 왔습니다. 안치홍 강민호 전준우 손아섭 오지환 이런선수가 잘해야 인기가 있습니다. 실제 중계를 보시면 잘 아실껍니다. NC나성범 같은 경우 엄청나게 칭찬을 했는데 본인이 소화 잘 해서 슈퍼스타 되었습니다. 넥센이나 엔씨같은 팀은 대기업이아닙니다. 기반이 약하면 스타가 있어야 사람들이 찾아갑니다. 국내야구 중계는 민감합니다. 중립성은 지키는데 선수에 대해서는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칭찬을 더 해줍니다.



Q.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을 하시는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의 역할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9,10구단 그리고 고양원더스를 기획하고 주도했습니다. 2년 동안 3팀 만들면서 바빴습니다. 구장설계참여 할 때 많은 역할을 합니다. 포수 뒤에 본부석처럼 만들고 팬들이 앉습니다. 사람들은 제 일정이 해설만 하는 줄 알지만 야구계에 제 시간을 거의 다 쓴다고 보시면 됩니다. 시즌 후에는 정부관계자, 시장들 만나서 운동장 만드는 거라던지 학교팀들 만드는 거라던지 정신없이 바쁩니다.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을 6년째 KBO총재와 하고 있어서 방송에 조금 시간을 뺏긴 아쉬움이 있습니다. 야구동호회 동호인이 2만명이 있는데 장소가 없습니다. 야구장이 예전에는160여개가 있었지만 지금은 300개 넘었습니다. 담양에 중학교 창단작업 도와주었습니다.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을 무보수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일하기 쉽지 않습니다.



Q. 2014년 시즌 전의 예상과 시즌이 시작된 이 시점에서의 판도 변화는?

금년에는 미국 애리조나에서 메이저리그위주로 봐서 예상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LG, 롯데, NC만 봤고 그리고 두산은 투수조만 왔었습니다. 캠프장을 둘러보지 않고 예상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또한 전력을 비교한다는 것도 안됩니다. 그래도 4강 꼽으라면 삼성, 두산은 들어간다고 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롯데하고 넥센이 간다고 하지만 제가 보면 쉽지 않다고 봅니다. 외국인 투수 2명이 나이가 많고 전력분석이 다 되었습니다. 외국인 2명이 20승해주는 팀과 10승도 못하는 팀은 천당과 지옥차이입니다. NC는 다크호스라고 생각합니다. 전력보강도 잘 되었고 외국인투수도 1명 더 있고, 손시헌과 이종욱이 왔고 김경문감독의 리더십도 일사분란합니다. 아마도 4강 이상 예상합니다. LG가 예상보다 못하고 있습니다. 리즈가 빠지고 부상선수도 있고 김기태감독도 사퇴하고, 하지만 LG가 힘 있어서 아직 모릅니다.



Q. 만약 대통령 이라면 야구계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시겠습니까?

대통령이 야구만 생각해서 되겠어요?(웃음) 야구는 스포츠 전체를 생각해야됩니다. 건강복지가 중요합니다. 체육시설에 돈 투자해서 국가 건강에 도움을 줘야 됩니다. 미리 병에 걸린 다음에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전예방을 미리미리해서 체육활동을 확대 해야 된다. 쉽게 가서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됩니다. 체육시간이 없는 초등학교가 많은데 이것은 체육정책 바로 잡아야 됩니다. 

체력은 약해지도 체격은 커지고 질병자 많아지고 정신질환자 많아지고 해서는 안됩니다.K 스포츠를 통해서 협동심과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지고 승복할 줄 알아야 됩니다. 영국 미국 강국으로 가는 이유가 스포츠강국이기 때문입니다. 야구계만 보면 경제대국이라고 하는데 돔구장 없습니다. 학교마다 축구장 있는데 야구장은 없는 것은 행복추구원 위반입니다. 같이 겸용으로 쓰는 정책전환이 필요합니다. 서울시장 후보들도 돔구장을 짓겠다고 공약을 했다. 돔은 복합돔 구장을 만들어서 문화예술체육을 하면 됩니다. 야구는 180일 정도 쓰고 다른 날들은 다른 행사를 하면 됩니다. 월드컵 축구장 많이 지어놔서 지자체가 비용부담이 큽니다. 이런데 돈을 쓰지 많고 국민들 삶의 질 높이는데 써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SNS 댓글 인터뷰


(안종혁)​

 LG선수들 중에 어떤 선수를 가장 눈여겨 보시나요? 


오지환




(임승욱)​ 

올해 유독 오심이 많은데 이러한 오심이 왜 발생하는지 비디오판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심은 옛날에도 있었습니다. 촬영기술이 좋아지면서 오심이 많이 잡힙니다. 올해는 유독 많이 있는데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심판들이 긴장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지나가는 과정으로 봅니다. 극복해야지 피해가면 안됩니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 구축 해야 됩니다. 비디오 판독을 하려면 시설이나 투자가 있어야 돼서 예산이 많이 듭니다. 한국실정에 맞게 실시해야 됩니다.




가장 보람 있으실 때는 언제입니까?


 저는 야구중계이후 요즘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포항구장이 히트를 쳤는데 설계를 바꾸고 바꾸고 해서 만들었습니다. 울산이 다음이고 대구 광주경기장 만들 때 자문을 해주고 설계를 바꿨습니다. 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염홍철 대전시장한테는 대전구장에 풀 한포기가 없다고 비판하자 천연잔디로 바꾸었고 사직구장도 바꿨습니다. 예전에 제가 방송 중에 해설 그만 할 때까지 대구 광주구장이 신축되는걸 보고 싶었는데 이제 광주는 되었고 대구는 몇 년 있으면 됩니다. 관중위주의 구장이 늘어나야 됩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노윤창, 임승욱, 강상헌, 양희만

사진/ 안지수

편집/ 노윤창

  1. 2016.07.05 06:30

    비밀댓글입니다

  2. 허구연 2016.07.05 06:31

    해설자들의자질없는사람 은좀교체하십시요





Q. 안녕하세요. 인터뷰를 읽을 독자들에게 간단한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프로기사 이다혜입니다. 바둑기사하면 아저씨 혹은 남자를 떠올리기 쉬운데 저는 여자구요 프로 4단입니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Q. 바둑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셔서 친구 분들하고 바둑을 두시느라 귀가 시간이 늦으셨어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저를 아버지와 바둑 두게 하려고 바둑학원에 보내셨는데 배워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Q. 그 때가 몇 살이었나요?


9살이었어요. 아버지가 지금 3급이신데, 제가 1년 만에 아버지를 따라잡았어요. 바둑학원 선생님께서 제가 바둑에 재능이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본격적으로 배웠습니다.




Q. 그럼 지금 아버지와 한다면 어떨까요?


제가 많이 접어 드려야죠(웃음)




Q. 한국외대 일본어과인데 어떻게 진학하게 되었나요?


중학생 때 입단을 했어요. 고등학교를 선택 할 때 학교 공부를 할까 바둑을 공부할까 고민을 하다가 바둑 특기생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바둑은 한,중,일이 강한데 한국에서 열리는 경기에 외국 기사들이 많이 참가해요. 그 때 일본 기사와 어울릴 기회가 있었는데 서로 말이 안 통해서 친해질 수 가 없었어요. 이 사람과 친해지려면 언어를 배워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고등학생 때 일본어학원을 다녔어요. 배우다보니 일본어를 좋아하게 되어서 대학교 진학 할 때 망설임 없이 일본어과를 선택했죠.




Q. 바둑기사가 총 291명인데, 그 중 여자기사는 51명으로 알고 있어요.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데, 여성이라서 불리한 점이 있나요?


제가 입단했을 때는 여자기사가 25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배로 늘었으니 그렇게 적은 숫자는 아닌 것 같아요. 여자기사가 예전에는 약했는데, 최근에는 실력이 많이 향상 되서 남자기사들한테도 잘 이기고 국가대표에 선발되기도 해요. 역시 본인이 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Q. 프로 4단이신데, 단수에 대해 설명을 해주세요.


바둑을 처음 배우면 통상적으로 20급부터 시작해서 한급 한급 내려갑니다. 1급이 제일 높겠죠? 다음 단계는 유단자로 1단부터 7단까지 있어요. 그 다음은 프로로, 프로기사가 되려면 입단대회를 통과해야 되요. 입단에 성공하면 초단부터 9단까지 있는데 물론 9단이 제일 높아요.




Q. 민감한 질문 일 수 있지만 바둑 기사의 수입은 어떤가요?


모든 스포츠계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바둑계도 그렇습니다. 성적이 좋으면 억대연봉자가 될 수 있죠. 바둑은 특이하게도 ‘대국료’라는 것이 있어서 대회에 참가하는 자체로 일정 금액을 받습니다. 예선보다 본선이 금액이 크고 특히 우승 상금이 큰 시스템입니다.




Q. 강연 및 특강을 주로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처음 강의를 시작한건 군부대였어요. 장병들에게 바둑을 가르쳐주면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 해서 한국기원의 지원을 받아 군부대에 바둑보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남자밖에 없는 곳에 혼자 간다는 것이 굉장히 무서웠어요. 당시에는 20대 중반으로 쑥스러움도 많이 탔고 너무 떨려서 전날 잠도 못자곤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나아지더군요. 처음에는 기 싸움에서 밀렸는데 ‘나는 선생이고 너희들은 학생이다’라는 주문을 걸고 강의하니까 긴장이 덜 되더라고요.




Q. 노하우가 생기신 건가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강의하는 것이 즐거워요. 군부대를 비롯해서 2011년부터 다문화 가정에도 바둑을 가르치고 있는데 가족끼리 바둑을 두는 모습을 보면 기분도 좋고 아이들도 밝아지는 것 같아서 계속 하고 있어요. 또 교양바둑 강의도 하고 있는데 대학생들이 일주일이 다르게 실력이 느는 것을 보면 놀라워요. 바둑을 가르치는 것이 보람도 있고 즐거워서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어요.




Q.바둑을 둘 때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역시 이겼을 때죠. 저보다 잘하는 사람에게, 제가 스스로 만족할만한 내용으로 이겼을 때가 제일 좋아요. 뭐랄까.. 제가 바둑을 연구해온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랄까요?




Q. 본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명승부를 말해주세요.


국가대표로 나갔을 때도 있지만 국내 대회에서 저보다 재능이 뛰어난 두 명의 기사에게 연달아 이겼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누구나 살면서 빛나는 순간이 있는데 저에겐 그때가 프로기사로서 가장 빛나던 때였던 것 같아요. 2006년에 둔 바둑이 아직도 떠오를 정도로 인상적인 승부였어요.




Q. 바둑의 장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요즘의 게임은 자극적이고 화려하죠. 그런데 하다보면 어느 순간 질리지 않나요? 바둑은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까워서 질리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올해로 20년 가까이 바둑을 두고 있는데 아직도 바둑판 앞에 앉으면 느낌이 새로워요. 항상 새로운 기분으로 둘 수 있는 것! 이게 바둑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바둑은 인간의 지적유희로서 몇 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대부분의 게임은 사라지겠지만 바둑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요?




Q. 바둑을 보급할 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우선 바둑에 관심을 갖게 해야할것 같아요. 혹시 이 만화책 아시나요? ‘히카루의 바둑’. 국내에는 고스트 바둑왕으로 알려져 있고, 제가 완전판 바둑용어를 감수했어요. 이 만화책을 보고 바둑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많죠. 작년에는 ‘미생’이라는 웹툰이 인기를 끌면서 바둑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갔어요. 이런 식으로 바둑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제가 지니어스에 출연한 것은 우선 프로기사라는 직업을 알리고 싶었고, 혹시라도 제가 잘하면 사람들이 ‘바둑한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해서 나간 거였죠.


그리고 젊은 층들이 바둑을 즐길 장소가 필요한 것 같아요. 기원의 이미지는 아저씨들, 담배연기잖아요. 젊은 층, 특히 여성들을 위한 바둑카페 같은 곳이 생기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부자가 되면 꼭 바둑카페를 개점하고 싶은데 잘 될지는 모르겠네요.(笑)




Q. 지니어스 얘기가 나와서 할게요. 3회에 탈락을 하셨는데, 아쉬운 점이 굉장히 많았을 거 같은데 어떤가요?


사실 첫 회에 떨어질 줄 알았어요. 출연을 결정하고 멤버를 확인했는데 다들 너무 쟁쟁한 사람들이어서, ‘내가 여기 왜 껴있지? 지금이라도 그만 둬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1회 녹화 전에는 정말 자신감이 없었죠. 그런데 TV에서 보던 연예인들과 스타할 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임요환, 홍진호 오빠와 함께 플레이 하는 것 자체로 즐겁더라고요.잠깐이지만 머리 쓰는 즐거움도 느껴보구요.


3회 때는 인생의 쓴맛을 봤어요. 궁지에 몰려보니까 ‘세상이 만만하지가 않구나’ ‘내가 쓸모가 없으면 버려 질수가 있구나’ 란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당시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게임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쉬운 건 데스매치에서의 제 자신이죠. 저는 제가 그런 게임을 잘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닥치니까 눈앞이 깜깜하더라고요. 적막감이 감도는 가운데 카메라가 몇 대나 나를 찍고 있고, 무엇보다 제가 떨어짐으로써 바둑기사의 이미지가 훼손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집중이 잘 안 되었어요. 결국 멘탈이 흔들려서 진 거죠. 한 2주간은 밥 먹다가도 생각나고, 자려고 누워서도 ‘내가 왜 그 때 결을 불렀지?’ 하면서 이불을 걷어차곤 했어요.

  



Q. 이은결씨 공연을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지니어스 끝난 후에도 멤버들과 연락이 되나요?


지니어스가 굉장히 묘한 프로그램이잖아요. 몇 시간동안 세트장에 갇혀서 게임하다보면 정도 들고 할 말도 많아요. 두희오빠가 탈락했을 때는 진호오빠와 위로모임을 가지기도 했어요. 윤선언니와도 만나고, 홍철오빠나 재경씨도 연락하면 잘 대답해 줘요. 이번에 지니어스 멤버들과 은결오빠 공연을 같이 보니 참 좋았어요. 진호오빠도 바빠서 못 올 줄 알았는데 와서 좀 놀랐어요. 앞으로도 이 인연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Q. 바둑 꿈나무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혹시 프로기사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저는 부모님이 반대를 하셨는데 저는 프로기사가 정말 되고 싶었어요. ‘이 길이 내 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결과적으로 입단에 성공했고 제 직업에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주변에서 힘든 직업이라고 반대하더라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사회악이 아니라면 진짜 죽을 각오로 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때 바둑에 미쳐 살았어요. 하루에 공부를 10시간씩 1년 내내 했어요. 그 정도로 하니까 되더라고요. 본인이 선택했으면 힘들다고 하지 말고 제대로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저 뿐만 아니라 모든 프로들이 그렇게 살았을 거예요. 본인이 직접 자신의 길을 선택을 하고 미친 듯이 노력하면 아마도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Q. 인생과 바둑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다혜씨가 생각하는 비슷한 부분이 있나요?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인생과 닮은 점이 많아요. 예를 들어 한번 둔 수는 무를 수 없고 끝날 때까지 움직일 수가 없어요. 인생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한 번 결정을 하면 그 결정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 신중하라고 하는 거죠. 또 바둑은 한 판에 적어도 세 번에 기회가 온다고 하는데 인생도 살다보면 좋은 기회가 오잖아요. 저는 그 기회 중 하나가 지니어스라고 생각해요. 저한테 인생의 선물 같은 프로그램이었죠.


또 바둑을 두면서 희로애락이 교차하는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상대 돌을 잡으면 기쁘고 내 돌이 잡히면 슬프고, 상황이 불리하면 괴롭고 유리하면 즐거워요. 사는 것도 그렇잖아요. 기쁠 때, 슬플 때, 힘들 때, 즐거울 때가 있는 게 인생이니까요.




Q. 앞으로의 포부를 말씀해주세요.


바둑을 가르치는 것이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교육할 때 가장 즐겁기 때문에 바둑교육 관련 일을 하고자 합니다. 단기적인 목표는 논문을 잘 써서 졸업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더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심리학, 교육학 등 다방면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바둑을 알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SNS 댓글 인터뷰


(발광테란)

지니어스에 같이 하였던 출연진들 중 바둑기사로 전향하면 가장 성공 할 것 같은 사람은 누구고 왜 그 사람인지 궁금해요


지니어스 출연진들은 대부분 잘할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꼽자면 진호오빠와 요환오빠가 아닐까 싶어요. 스타크래프트와 바둑이 비슷한 점이 많거든요. 제가 느끼기에 두 사람은 지니어스 녹화할 때 지금 한 수가 아니라 다음 수를 보는 것. 즉 바둑에서의 수읽기를 연상시키는 플레이를 했던 것 같아요. 자신만의 독특한 구상과 아이디어도 신선했고요.




(노총재)

라이벌은 누구인지?


 어릴 때 라이벌이 있었는데 저보다 바둑을 잘 했어요. 동갑으로 저보다 성격도 좋고 얼굴도 예뻤어요. 그 친구한테 바둑을 이겨보려고 진짜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몇 년동안 계속 밀리다가 입단대회에서 이겨서 입단했을 때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죠.




존경하는 선후배는 누구인지?


 정말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바둑기사로서는 이세돌 오빠가 존경스러워요. 세돌오빠는 마치 바둑을 두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아요. 저도 같은 기사지만 세돌오빠와 대국하면서 나랑은 차원이 다른 천재구나라는 일종의 갭을 느꼈어요. 재능 뿐 아니라 바둑을 대하는 태도도 진지해요. 저한테는 바둑이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세돌 오빠는 바둑이 인생의 전부인거 같아요. 그 정도로 진지하고 열정적이에요.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무엇이 있나요?


 제가 소심한 편이라서 우승을 잘 못 했어요. 아마추어 때부터 2등을 많이 했죠. 그래서 진호 오빠에게 친근감이랄까 유대감을 느꼈어요.(笑) 예전에 시합 전에 ‘무조건 이기자’라고 마음 먹었었는데, 요즘에는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두자라고 좀 변했어요. 지니어스도 우승 욕심보다는 저에게 떳떳하게 플레이 하고 싶었어요. 장기적으로 보면 억지로 운 좋게 이기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떳떳하게 승리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아요.




(스티치) 

다혜님! 지니어스에서 가장 좋아했는데 일찍 떨어져서 너무 아쉬웠어요ㅠㅠ.. 나중에 또 방송 출연계획이 있으신가요?


제 자신에 대한 것보다는 바둑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출연할 것 같아요. 다양한 채널에서 바둑 관련 프로그램 혹은 바둑과 관련된 내용이 방송되면 바둑계에 정말 좋을 거 같아서요. 그런데 불러줘야 나갈 수 있는데 아쉽지만 연락이 오질 않네요.




좋아하는 노래는?


제가 가수 윤하와 친구인데 친구라서가 아니라 윤하노래 정말 좋아해요.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다음날 ‘오늘 헤어졌어요’란 노래를 택시 안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그만 펑펑 울고 말았죠. 윤하노래는 특히 콘서트에 가서 들으면 더 좋아요! 아 갑자기 윤하가 보고싶네요.




이다혜에게 바둑이란?


한 때는 제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이었어요. 예전에는 바둑에 대한 제 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난 줄 알았어요. 프로가 되고 우승을 한 번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바둑은 제게 20년간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었고, 선생님이란 말을 듣게 해 주었어요. 다시 태어나도 꼭 다시 바둑을 배우고 싶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노윤창, 양희만
사진/ 이광민, 김은진

편집/ 안지수

 “인생은 준비의 연속”....좋아하는 가수 나훈아 “노래방가면 나훈아 뽕짝 불러”

강의 중 절반은 “인생의 경험이야기“/ 야구 감독에 대한 꿈-언제든 불러주면 간다.


2014년 3월 24일 극동대학교에서 김봉연 교수와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해태 타이거즈 부동의 4번타자, 그리고 프로야구 원년 홈런왕 김봉연!

그의 이야기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Q. 이 인터뷰를 읽을 독자들에게 간단한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동아리학생 여려분 안녕하십니까? 사회체육학과 김봉연교수 입니다. 우리 동아리 학생들의 활동을 보고 이렇게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는데 여러분들이 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불러만 주시면 달려가겠습니다.




Q. 야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우리시대에는 밥 먹고 살기 힘든시기였고 또한 쌀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자장면의 위력이 컸습니다. 먼저 야구를 시작한 형을 찾으러 간 교무실에서 야구선수들이 먹고 있는 짜장면을 보고 ‘나도 야구를 하면 자장면을 먹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초등학교 3학년 말에 들어서 4학년때 부터 야구를 시작하였는데 프로야구 은퇴할 때 까지 후보선수를 거치지 않은 것은 대단한 경력이라고 생각합니다.




Q. 프로데뷔는 언제하였고, 어떤 각오로 시즌을 맞이했나요?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였는데 말로만 프로이지 아마추어리즘 같은 선수들의 자세였습니다. 냉정함보다는 끈기와 팀워크를 강조하였던 시기였습니다. 프로는 돈이 높은 관점을 갖기 때문에 선수들이 생각하는 것과 플레이 하는 것 자체가 달랐습니다. 대학, 실업, 국가대표를 하면서 홈런왕을 놓쳐본 적이 없어서 역시 프로야구 원년에도 놓쳐서는 안된다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Q.1982년 원년 홈런왕을 차지하셨는데 ‘대타홈런’이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당시 상황은?


 부산에서의 경기 중에 홈 슬라이딩을 하다가 발목 부상을 당해서 경기를 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홈런 개수에서 백인천, 김성한, 김준환 선수들보다 많았었는데 점차 따라오고 있어서 삼미와의 경기에서 주장의 권한으로 김우근 선수보고 나오라고 해서 들어간 타석에서 홈런이 나왔습니다. 몸이 안좋은 상태라서 안타를 쳤다면 뛰지 못하고 아웃이 될 상황이었는데 정말 극적인 만화같은 상황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Q. 가슴 아픈 사연의 트레이드마크 ‘콧수염’


82년 해태가 6개 구단중 4위를 했지만 홈런왕과 타점왕 타이틀을 가지고 왔습니다. 다음해에 그에 대한 기다가 컸고 김응룡 감독이 부임하면서 전력 보강도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83년에 해태가 전기리그 우승을 하였는데 올스타전 1주일전 하루정도의 여유가 있어서 여수 여행 갔다가 호남선에서 불의의 교통사고 당했습니다. 지금의 얼굴이 314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을 했었습니다. 야구를 할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을때 10일만에 방망이를 잡았고, 잔디밭에서 15일만에 방망이를 돌려봤고, 20일만에 실내야구장에서 공을 때려보고 한달 만에 퇴원해서 경기에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엄청난 정신력이라고 생각합니다.




Q. 중태 이후에 3일 이후에 깨어났는데?


가족에게 유니폼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거울을 가져다 주었는데 보니까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때 그래서 ‘교통사고 당했구나’ 라는 생각이 났습니다. 눈만 보이고 얼굴과 온몸이 붕대로 있었으니까 중상을 입었다고 느꼈다.




Q. 83년 한국시리즈 MVP를 받은 후에 라면집에 간 사연은?


1983년 교통사고 이후에 술과 담배를 끊었다. 야구를 오래 하고 싶어서 몸에 좋지 않는 것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시리즈에서 19타수 9안타 경이적인 기록을 차지하면서 우승하고 다른 선수들은 헹가레도 치고 나이트 클럽에서 파티도 하고 이벤트를 하고 있었지만 본인은 술을 먹어야 될 것만 같아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호텔 뒤에 동네 슈퍼에 들어가서 라면을 주문하였는데 주인장이 “오늘의 대한민국 최고의 사나이가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물어보았는데 저는 ‘나한테 소중한 한끼다, 만끽하고 있으니 염려말아라’라고 했습니다.



Q. 그 당시 연봉 제도는?


당연히 있었습니다. 1982년 원년 연봉 책정하는데 김봉연 선수가 과연 프로야구의 기준점이 되야 되는데 어떻게 맞추느냐에 고민이 있었습니다. 김봉연의 연봉은 실업팀의 10배인 2400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받지 못했습니다. 해태는 회사가 작기 때문에 김봉연한테 그만큼 주게 되면 다른 선수들에게 돈을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시발점이 잘못되었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원망도 했습니다. 왜냐면은 김봉연이 그만큼 받아야 되는데 못 받으니 그 다른 선수들도 그만큼 많이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연봉에 대해서 불이익을 많이 받았습니다.




Q. 그 당시 CF도 찍은 걸로 알고 있는데?


1982년 우승도 하고 83년 한국시리즈 MVP도 하고 개인 타이틀 많다 보니 몸값이 뛰게 되었습니다. 소주, 브라보콘, 약 등 여러 가지를 했는데 그 당시 톱 탈랜트들이 최고 500만에 계약을 했었는데 저는 1200만원에 소주CF를 찍었습니다. 운동선수가 탈랜트보다 많이 받고 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예인들보다 광고 효과가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그당시 응원가가 있었는가?


있었는데 유행하게 부를만한 응원하면서 부를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가장 대중적인 ‘목포의 눈물’로 낙점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노래는? - 팝과 재즈를 주로 듣습니다. 우리시절에 맞는 포크송(기타, 송창식, 윤형주)도 듣습니다. 또한 뽕짝창법(특히 나훈아)을 좋아합니다. 지금 노래방에 가도 나훈아 노래를 부릅니다.




Q. 현장에 복귀해서 감독에 도전하실 생각이 있나요?


 2000년에 해태 2군감독을 마지막으로 해태가 부도나면서 기아가 되었는데 구단 관계자들이 김성한 선수를 점찍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하다보니 강한 리더십보다는 부드러운 리더십(소통)을 고르게 돼서 김응룡 감독으로부터 ‘프로라는 정신을 이어받지 못했구나’ 라고 슬프게 떠나왔습니다. 그것이 프로야구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Q.감독제의가 들어온다면?


지금도 야구는 항상 머릿속에 있습니다. 광주의 새로운 야구장 개장식에도 다녀왔습니다. 프로야구 감독으로 초대한다면 팀을 가리지 않고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현재감독들이 (후배,선배들이) ‘김봉연이 감독을 못하는것이 아쉽다’ 라고 할 때 저도 안타깝습니다.



Q. 예전의 광주 무등 경기장에서 뛰었었는데 이번에 바로 옆에 새로 개장된 챔피언스 필드에 대해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좋아졌습니다. 정말 부러울 정도로 잘 지어났습니다. 친환경적인, 친 야구 팬들을 위한 야구장이 되었습니다. 야구장을 보기 위한 팬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기아가 야구를 잘하면 팬들을 많이 확보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개장식에 참여해서 경기를 하면서 제일 먼저 그라운드를 밟아본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올 시즌 야구 평가?


올해는 절대강자였던 삼성이 오승환 선수가 일본으로 가면서 평준화가 되었습니다. 또한 NC가 지난시즌 꼴지의 예상을 뒤엎고 7위를 한 것이 프로야구 반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봅니다. 내년에 KT가 1군에 합류하면서 10개구단이 운영됩니다. 절대강자가 없는 혼전이 예상됩니다. 시범경기서부터 의외의 순위가 만들어 졌습니다. 본경기가 시작되면 혼전이 예상됩니다.




Q. 음성군 야구 협회장?


극동대학교 앞 감곡면에 야구장이 들어섭니다. 야구장 활성화 되려면 야구팀이 생겨야 되는데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 연합회 회장을 맡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야구팀을 만들어야 겠다는 구상으로 협회장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Q. 야구하면서 번트 대본적이 있는지? 


1982년부터 1988년 은퇴할 때까지 7년동안 딱 한번 해봤습니다. MBC청룡과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무사 1.2루 성공했는데 야유가 심했습니다. 왜냐면 4번타자한테 번트를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팬들이 김응룡한테 많은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다음에 번트 기회가 있는데 벤치에서 치라는 사인이 나와서 치니까 홈런이 나왔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번트란 없었습니다.




Q.인생을 야구에 비유할 수 있나요?


- 사람한테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성과가 얻어지는 것입니다. 우선 자기가 하는일에 철저하게 프로정신을 가지려면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야 됩니다. 누구나 1위를 할 수는 없습니다. 경쟁자를 이기려면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Q. 귀농했는데 복숭아 농사는 잘 되는지?


극동대 교수로 오면서 아들딸 시집,장가 가고 농사도 지을 겸, 또한 학교 교수 생활 하는데 있어서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학교 앞으로 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복숭아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하다보니 야구는 자기가 가진 힘의 100프로 이상 발휘하는데 농사는 15-20프로의 힘밖에 발휘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따로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년 전에 복숭아밭을 정리했습니다.




Q. 타이거즈의 레전드로서 최근의 기아의 부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 안타깝습니다. 해태하면 용맹스러운 팀 이미지인데 즉, 호랑이 같은 용맹이 아니고 경기에서 이기려는 것입니다. 2009년 우승이후 선동렬 오면서 야구가 작아졌습니다. 한점을 내기 위한 작전을 보면서 옛날 해태야구를 보던 팬들은 재미가 없어졌다고 할 것입니다. 통이 큰 야구를 해야 됩니다.




Q. 콧수염과 성적과의 상관관계


개인적으로 곤혹스러웠습니다. 기르고 싶었던 것이 아니고 면도를 하다가 덧이 나서 운동장을 못나갈 정도로 독이 올라서 기르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방망이가 맞지 않아서 84~85년에 슬럼프가 왔습니다. 또한 탈모도 생겼고, 병살타왕등 좋지 못한 기록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야구를 이렇게 마무리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85년도 시즌 끝나고 면도를 하고 86년도 공심타법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홈런을 안치고 안타만 친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결과 홈런, 타점, 장타력 3관왕을 했습니다. “욕심이 앞서가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2부 교수 김봉연


Q. 어떤 인연으로 극동대학교에 오게 되었나?


2000년도에 11월에 해태 계약 끝나고 우연히 식사자리에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제가 책 읽는 선수로 알려져 있어서 논문도 작성하고 학위도 취득했습니다. 박사학위 들어가기 전에 코치생활하면서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강의 해보라는 친구의 권유가 지금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Q. 첫 수업 학교 강의 때?


교양 체육과목인데 수강인원이 67명이었는데 첫 수업을 위해 3개월간 공부했습니다. 첫시간에 이름을 한문으로 썼는데 아무도 몰라서 순간적으로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이승엽선수는 아느냐라는 질문에 다 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승엽 선수 보다 야구를 더 잘 했다고 하자 안믿는 분위기 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한테 물어보라니까 다음 수업시간에사인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겸임교수 하다가 교수가 되고 학생들도 점차 알아봤습니다.




Q. 어떤 과목과 직책을 맡고 있나요?


골프, 운동과 건강, 테니스, 농구등을 했고, 야구는 할만한 장소가 없어서 못하고 있습니다. 홍보실장 학생처장, 홍보센터장등 학교일을 우선적으로 합니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왔습니다.




Q. 야구와 골프의 차이점? 공통점?


공통된 것은 하나인데 임팩트 순간입니다. 이론이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리는 순서가 다르다는것이 차이점입니다. 하지만 두 개를 비교하면 안됩니다. 야구는10번 중에 3번만 잘 치면 되는데 골프는 10번중 10번 잘 처도 스타가 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골프가 어렵다는 사람은 운동에 소질이 없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Q. 총장직에 욕심?


 거기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여러 직책을 맡았지만 학교발전을 위해 어떻게 헌신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Q. 교수직을 하면서 이루고 싶은 것은?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필요한 인재가 될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강의중 절반을 인생에 대한 이야기 합니다. 충분히 공감갈 수 있는 경험적 이야기 해줍니다.




Q. 김봉연에게 야구란?


 ‘인생의 전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후배 선수들이나 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뭐든지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한테 기회가 많이 온다는 점입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삼선, 사선까지도 생각해 놓아야 됩니다. 선수들이 막연하게 제일 잘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준비 되려면 노력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Q. 김봉연에게 극동대학교란?


 내 인생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준 학교입니다. 야구를 하면서 영어, 한문, 세계사, 한국사가 미리 준비가 되어서 인연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극동대학교에 다시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 모든 인터뷰를 끝낸 김봉연 교수는 옛 추억에 잠시 잠긴듯 환한 미소를 보이며 자리를 떠났다. 왕년의 대스타의 인터뷰를 한다는 자체가 큰 영광이었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시간이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노윤창

영상/ 이광민

편집/ 양희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