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들어선 그의 모습은 매우 인상 깊었다. 큰 키와 서글서글한 인상,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는 흡사 유명 모델을 떠올리게 했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모른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항상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었다. 달력, 잡지, 앨범 커버 등 우리 곁에서 외로움, 절망,쓰라림 같은 아픔을 달래주는 치료제다.
일러스트레이터 최정현
Q. 인사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 겸 페인터로 활동하고 있는 최정현입니다. 반갑습니다.
<과거>
Q. 언제부터 그림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는지.
대부분 그렇겠지만 학생 시절 그림에 대한 꿈이 있더라도 디테일하게 카테고리를 나눠서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저는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었어요. 이유는 만화같이 멈춰있는 것을 그리는 것도 멋지지만 애니메이션은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이잖아요. 움직이게 만드는 작업이 재밌어서 하고 싶었는데,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대부분 팀 작업인 경우가 많고 작업 시간도 많이 소요되다 보니, 제 성향과 안 맞았죠. 제가 생각한 걸 빨리 그려서 대중들과 공유하고 소통하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렇게 작업을 하면 내가 먼저 지칠 것 같아서 일러스트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됐어요.
Q. 중학교 때 혼자 태국 여행을 다녀온 걸로 아는데, 지금은 몰라도 이 때 당시에는 흔치 않은 일일 텐데.
해외가 아니더라도 어릴 때부터 잘 싸돌아다녔어요. 심지어 길을 찾고 집에 돌아올 능력이 부족한 어릴 때부터 혼자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다가 고속도로에 갇혀 본 적도 있어요. 중학교 때는 부모님의 제안으로 갔다 왔어요. 제가 그림을 좋아하고, 부모님이 이런 쪽으로는 개방적이셔서 남자니까 혼자 여행을 갔다 오라고 하셔서 3박4일 동안 갔다 왔죠. 첫 해외여행이었고 정말 재밌었어요. 단순하게 새로운 것을 본 것도 많지만 사건사고가 많았어요.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잘 적응했죠. 무식하니까, 모르는 게 힘이 됐었던 것 같아요. 돈을 뺏겼었는데, 겁은 났지만 사람이 혼자 남겨졌을 때 위기가 닥쳐오면 당황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대처를 더 잘하는 것 같아요. 돈을 훔쳐간 사람들한테 한국말로 욕을 했죠. 물론 돈을 다 찾지는 못했지만 다 경험이 되고 재밌었어요.
Q. 태국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본인을 있게 했나.
제 인생을 흔들 만큼 큰일은 아니었지만, 작은 경험들이 모여서 사람을 구성하잖아요, 저도 이 당시에 느꼈어요. 나는 해외가 아니더라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를 보고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혼자 있는 시간을 되게 중요시 했어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외할머니,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여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계속 혼자였어요. 그래서 외로움을 많이 타고, 지금도 많이 타는 성격이에요.
제가 하는 작업도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시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이런 이중성을 갖고 살아가는데, 여행이라는 것이 주는 장점이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데 엄청 큰 도움이 됐고, 시각적, 청각적 자극들, 모든 것들이 그림을 구성하는데 소재가 됐어요.
그리고 약간 방랑벽도 있는데, 이게 다르게 말하면 궁상맞은 느낌이에요. 남자 혼자 생긴 거랑 다르게 감성적이고, 여행지 가서 카페에 앉아서 혼자 본 것들 기록하고 이런 것들이 길어지면 너무 궁상맞아요. 마치 연애도 안했는데, 이별한 사람마냥 혼자 얘기할 사람도 없이, 풍경만 바라보는 게 웃길 수도 있고, 애늙은이 같기도 하지만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항상 말없이 다니는 건 아니지만, 여행이 끝난 뒤 혼자 호텔방에서 느끼는 정적 같은 게 외로움보다는 긍정적인 쪽으로 다가와요.
Q.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인가.
횟수로 따지면 많이는 아니에요. 물론 국내도 잘 돌아다니고 개인적으로 부산을 좋아해요. 시간이 된다면 당일에라도 내려가는 짓을 많이 했어요. 잘 돌아다니는 편이고, 해외는 일본, 홍콩, 호주 이 정도에요. 이게 제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죠.
Q. 독자들에게 추천해줄 만한 여행지
각자 세워놓은 계획, 금전적 여건에 따라 장소에 제한을 받게 되잖아요. 저는 부산이든, 홍콩이든 돈이 없어서 목적지가 바뀌는 것보다는 가고 싶은 곳을 먼저 정하면 어떻게든 돈을 모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행지에 가서 제가 즐겨하는 행동을 추천하고 싶은데, 유명한 곳은 한번쯤은 가는데, 저는 보통 서칭을 안하고 가요. 물론 메트로를 타는 법 같은 기본적인 건 하죠. 이런 건 준비하되, 어디를 가면 뭘 꼭 먹어야하고, 어디를 가면 뭘 꼭 봐야 된다는 건 너무 싫어요. 전부 일률적으로 거기만 가는 그런 것이 싫어서 이번에 홍콩 여행도 일주일 예약을 하고 날씨도 체크를 안 했어요. 아마 홍콩을 좋아해서 다녀오시니 분들 중에 6월에 가시는 분은 없을 거예요.
홍콩 사람들조차도 가장 덥고 습한 최악의 날씨라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굉장히 좋았어요. 호텔에 짐 풀고 첫째 날은 ‘호텔에서 1시간만 걷자.’해서 삘 꽂히는 방향으로 걷다가 골목으로 들어가서 쌀국수도 먹고, 이런 걸 즐겨 해요. 그러다 중간 중간 유명한 곳에 가기도 하고, 여기서 오는 모르는 장소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점이 더 매력적이에요. 혼자 여행을 가야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Q. 학력을 보니 청강문화산업대, 한성대, 호주 그리피스 대학교를 중퇴했다. ‘3번이나’ 대학교를 중퇴한 데에는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청강대는 입시를 안 보고 들어갔어요. 흔히 말하는 손들고 간 거예요. 사실 한국 예술 종합학교 애니메이션 학과를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준비했어요. 그 때만해도,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학교였어요.저도 가고 싶었고, 가고 싶었던 큰 이유는 첫 번째는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에게는 서울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학교의 분위기, 커리큘럼, 학교의 이름 때문에 꼭 가고 싶었고, 두 번째는 그 즈음에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안 좋았는데, 그걸 인지하지 못한 거죠. 고 2때쯤부터 알게 되고 국립학교라서 퀄리티는 높은데, 학비가 저렴하니까 가려고 했었죠.
고등학교 입시를 칠 때도 운 좋게 높은 경쟁률 속에서도 붙었어요. 한예종도 1차에서 운 좋게 붙은 거예요. 전국의 학생들 중에서 50명 안에 드니까 어린 나이에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죠. 자만심과 자신감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 것 같아요. 이 때 당시에 생각하기를 ‘이 학교까지 붙으면 소위 말하는 학력도 대박이다. 난 정말 멋있어 질 거야.’라고 생각을 하고 2차 준비를 안 했어요. 진지함이 사라진 거죠. 결국 2차를 떨어지고 방황을 했어요. 심지어 창피한 일이지만 한강에도 들어간 적도 있고... 그리고 청강대 애니메이션과가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좋은 고등학교의 자질 있는 친구들을 뽑아갔어요. 이 때 가게 된 거죠.
그런데 막상 대학교에 들어가니까 학생들이 수업에 안 나오는 거예요.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아까 말했듯이 애니메이션은 팀 작업인데, 안 나오니까 진행이 안 되는 거죠. 저도 이렇게 되다보니 입시를 다시 해야겠다 싶어서 한성대에 들어갔어요.
청강대 입학 전부터 미술 학원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한성대에 가니까 이미 돈은 벌고 있고, 갔더니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커리큘럼과 크게 다를 게 없이 느껴지고,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한다면 수업도 수업이지만 더 넓은 인간관계를 배웠어야하지만 어린 나이였기에 당시에는 일을 더 중점적으로 하는 게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휴학을 하고 자퇴를 하게 됐어요.
그리고 군대 영장이 나왔는데,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2학년 말부터 20대 초반까지 안 쉬고 일만 한 거예요. 그렇다보니 학비도 다 제가 내고, 지쳐있었어요. 군대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지만 스트레이트로 입대까지 하면 제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 같아서 중간 1년만 쉬었다 가력 호주를 갔죠. 호주 그리피스 학교에 다니다가 군대를 안가고 나간 거라서 비자 문제가 있어서 중퇴를 하고 돌아와서 군에 가게 되었죠.
그 당시에는 대학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꼈고, 지금도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은 많지만 그게 꼭 대학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아요.
아 그리고 이건 좀 딴 얘기일 수도 있는데, 요즘 SNS를 보면 어린 친구들이 아무것도 아닌 질문을 타인에게 하는 행위를 많이 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매니큐어 살 건데, 뭐 살까요?’ 본인이 충분히 결정할 수 있는데, 이건 단순한 결정 장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혼자 결정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제 의도와 상관없이 혼자 결정해야 했어요. 부모님이 반대하거나 막는 건 없었는데, 혼자 진행해보고 부딪혀보고, 얻고, 잃는 걸 미리 경험해보니 호주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하면 방법이 나온다는 걸 깨달았고, 무식했기에 가능한 거였죠.
일러스트레이터 최정현
<미래>
Q. 내년부터 뉴질랜드에서 활동할 예정인데.
호주를 다녀왔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뉴질랜드를 택했어요. 여러 가지 문화도 비슷하고 과거에는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항상 기회가 되면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동안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빚도 갚으면서 저 스스로 지쳐 있었어요. 그러면서 외국에 나갈 준비가 계속 딜레이 되고 있었죠.
그러다가 3년 정도 만난 여자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작년쯤 나가고 싶어 했는데,제가 준비가 부족해서 이제 나갈 예정이에요. 초기 정착금이라던가, 이런 건 아직 부족해요. 여자 친구는 대부분의 여성분들이 그렇듯 꼼꼼하게 현실적으로 저축을 잘했는데, 저는 악착같이 모으는 스타일이 아니라... 조금 덜 모이게 됐지만 비행기 표는 끊어놓은 상태에요.
Q. 본인이 봤을 때 국내에서 본인은 성공했다고 보는가.
전혀 아니에요. 결론부터 말하면 유명해지고 싶어요. 호주에서 돌아와서 작은 목표들을 이뤄가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지금은 제 이름을 인터넷에 치면 나오지만, 몇 년 전에는 안 나왔어요. 이걸 목표로 삼은 건 아니지만요. 직업에 분야를 떠나서 유명하다고 느끼는 척도가 얼굴만 봐도 알아볼 정도가 돼야 된다고 생각해요. 누가 봐도 ‘저 사람 텔레비전에서 봤어.’라고 나올 정도가 돼야죠. 예전에 우연찮게 강남역을 가는데 어떤 젊은 여성분이 같이 가는 친구한테 ‘저 사람 일러스트 작가잖아.’라고 하는 걸 우연히 들었어요. 이 때 표정관리를 최대한 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이 때 뭘 느꼈냐면, 진짜 유명해지는 것은, 그림으로, 얼굴도 알려져야 하지만, 그림이 유명해진만큼 제 수입도 올라야 진짜 유명해진 거라고 생각해요.
인지도 면에서도 아직 스스로 홍보하는 일이 많아요. 제가 가만히 있어도 기사가 나갈 정도가 되면 좋겠죠. 이렇게 인터뷰를 편하게 하지 못할 정도로... 무슨 말인지 알죠?(웃음)
Q.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해외로 나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나
걱정은 당연히 있죠. 30대가 되고 느끼는 건데, 꼰대식의 말일지라도 맞는 말이 있잖아요. 20대 초반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자고 일어나도 피곤하다라던가... 30대가 되고 고민이 많아졌어요. 20대에 비해 겁이 많아진 거죠. 항상 결론을 생각하게 돼요. 더군다나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런 걸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해요.
혼자 나가는 거면 덜 하겠는데, 이제는 결혼을 약속한 친구와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이건 한국에서 만든 기준이기는 한데, 서른이 넘었는데 돈, 차, 집도 없고 외국 나갔다 1년 만에 돌아오면 그 걱정을 안 할 순 없었어요. 이 고민은 항상 갖고 있었는데, 처음 고민이 들고 10분 정도 생각을 해보고, ‘내가 바보구나, 왜 또 이런 걱정을 하고 있지?’라고 생각했어요.
아인슈타인이 말했죠. ‘평생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라고... 나가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고, 그렇다고 헛된 희망만 품고 가는 건 아니니까... 지르는 게 답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보면 큰 걱정은 없어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부에 계속됩니다.
'인터뷰 >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뷰] 독립출판물 제작자 태재 "우리 집에서 자요." (1) | 2016.04.10 |
---|---|
일러스트레이터 최정현(CJroblue) 02. "일상의 온도" (0) | 2016.03.13 |
웹툰 '공복의 저녁식사' 작가 김계란 "즐기면서 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1) | 2016.03.13 |
고사 - '역사 국정화' 시대. 세뇌의 폭력을 보여준 연극. (0) | 2016.03.13 |
1인 미디어 창작자 쥐 픽쳐스(G pictures) 국범근 "급변하는 미디어계를 주도하고, 글로벌하게 발전시키고 싶어요." (0) | 2016.03.13 |